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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유럽앤틱(헤렌드, 델프트 등)
 
로얄비엔나의 아우가르텐 비엔나 로즈 데미컵과 소서
판매가격 95,000
제조사 아우가르텐(로얄비엔나)
원산지 오스트리아
수량
ea
     
 
 

조그만 데미잔식의 티잔이다.

딱 티볼만하다. 아주 귀엽다. 차 맛이 절로 나겠다.

그렇다고 에스프레소는 못마실일이 없다.

바로 아우가르텐의 대표 패턴인 비엔나 로즈다.

트림이 골드가 아닌 녹색이다

컵지름 7.5센티, 높이 4.5센티, 소서지름 11.5센티

7조다.

 







 

전혀 취급하지 않았고 생활도자기로선 그만한 것이 없다는 충고나 유럽의 많은 고급 고객들이 이들을 사랑한다는 주장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별로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오스트리아를 나름대로 사랑했기때문에 몰락한 그 역사만큼이나 파란만장한 것이 똑 닮은 것같아 


더욱 무관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유럽을 지배하던 오스트리아가 근대에 이르러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 영국등에게 밀려서 화려한 영화를 뒤로 하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경로를 이 도자기도 똑같이 밟았다는 느낌이 상당히 강했다. 또한 마리아 테레지아와 불쌍하게 사형당한 마리 앙뜨와네뜨의 인연도 한몫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거의 60여년이나 로얄비엔나와 아우가르텐이 단절이 된 탓에 먼 과거와 근세와의 거리감이 있었을까?

 

어쨋든, 이 도자기에 관심을 갖으면서 로얄비엔나, 아주 평범했지만 불행했던 왕녀 마리 앙뜨와네뜨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그리고 새롭게 조명을 받았고 지금은 황실로부터도 버림받은(?) 아우가르텐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차례가 아닌가 싶다. 

먼저 로얄비엔나(Royal Vienna)다. 유럽도자기의 처음을 독일의 마이센에서 장악했다면 유럽의 패자인 오스트리아가 그자체가 억울해서라도 프랑스 등에 다음 차례까지는 넘겨주지 않은 것이 당연했는지 모른다. 1710년경 두번째로 경질자기를 개발한 것은 오스트리아였지만 도자기에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가 집권한 1744년에 와서야 비로서 오스트리아 합수부르크가의 문장의 가운데 방패부분을 도자기에 백스탬프로 표시하기 시작하고 유럽의 맹주처럼 이 도자기도 합수부르크가의 영화를 뽐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바로 벌집처럼 생겼다 해서 'Beehive'라 불렸다.

 

이런 형태로 1864년까지 로얄비엔나의 백스탬프로 사용되다 결국 도자기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아마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브랜드 가치가 보호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문을 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이후로 엄청나게 발전한 유럽의 경질도자기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은 오스트리아의 국력과 비례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렇지만 그렇게 망하기전 1744년부터 1864년까지 당시의 유럽의 정치적 각축장에서 비엔나가 열강의 무대로 사용한 탓에 수많은 외교관과 국제회의를 통해 유럽 전역에 이 도자기를 최고의 도자기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유명세탓에 이 도자기를 모방하고 이 백스탬프를 유럽전역에서 사용한 탓에 지금까지 진짜 로얄비엔나 찾는 것은 전문가들이 아니면 어려울 정도가 되었지만. 하여간 오스트리아처럼 이리저리 쥐어 뜯긴 상처만 안고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전성기시대는 바로 합수부르크가의 유일한 상속녀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등장했을 때이다. 백스탬프를 사용한 1744년에 집권해 1864년까지 통치를 했다. 전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하면서 이 도자기도 마찬가지로 꽃을 피우게 된것이다. 바로 이즈음에 강력해진 영국과 통일독일에 맞서기 위해 평생 원수처럼 지내던 프랑스를 동맹국으로 삼고자 낯선 프랑스 왕궁에 자신의 딸인 마리 앙뜨와네뜨를 들여보낸 것이다. 순진하고 평범한 여인이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정치환경은 이미 그때 만들어진 셈이었다. 그때까지 Vienna Rose로 명명되던 짙은 분홍색 장미를 마리아 테레지아의 기품과 화려한 시대를 상징해서 로얄비엔나의 주력 패턴으로 사용했었으며 지금도 이 짙은 분홍색 장미는 유럽의 귀족들과 상류층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지만 황후가 된 후에 자신의 위상을 특별히 할 생각이었는지 사냥을 가서 별장에서 쉬는 동안에 그의 이름인 마리아 테레지아란 짙은 분홍장미를 사용하지 않고 녹색 장미를 주문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란 이름으로 유럽의 귀부인들에게 로망으로 군림하게 되었던 것이다.이 '마리아 테레지아'란 장미가 마리아 테레지아란 황후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된것이다. 아마도 본인의 이름과 동일시 된데 대해 거부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아니면 딸의 불행을 미리 예고하는 것처럼 짙은 화려함을 포기한 것인지. 이처럼 그녀만큼 고운 꽃인데도... 지금 올린 것들이다.

 

어쨋든, 오히려 이 디자인이 더욱 그녀의 원숙해진 나이를 대변하는 패턴이 아니었나 싶다. 젊을 때의 화려한 짙은 분홍색에서 차갑고 냉정한 노년을 상징하기에는 이런 짙은 녹색보다 더 좋은 색은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아름답기도 해야겠지만.

 

하여간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지는 고객들이 알것이겠지만 두가지 모두 수많은 애호가들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마지막으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었던 아우가르텐이다. 60년이나 지난 1924년 5월 2일 아우가르텐 궁전에서 막말로 유럽 전역에서 개나 소나 사용하던 로얄비엔나의 부활의 기치를 들고 과거의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갖는다는 장대한 꿈을 가지고 유럽의 막강한 도자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름도 '비엔나 도자기 아우가르텐 공장'으로 바꾸고 백스탬프도 새롭게 바꾸었다.

이후 아우가르텐 도자기는 과거의 명성을 거의 찾았고 유럽 각국의 왕가와 귀족들, 그리고 상류층에 납품하면서 최고의 브랜드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결국은 유럽의 도자기 회사들이 거의 그렇듯이 이 도자기회사도 경영난때문에 2003년에 파산을 당하고 지금은 다른 회사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300년이나 되는 전통도 전통이지만 이 브랜드 가치가 무한하다는 것을 아마 기업가들은 알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도자기들을 다시는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시 경영난이 올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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