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면도를 하다 실수로 귓볼을 가볍게 베어버렸다.
참 아둔하다!
거울 안에 삶에 찌들어 후줄근하게 생긴 초로의 사내 얼굴 귓볼에
피 한방울이 맺혀 있다.
귀라, 문득 고흐와 공재가 생각이 났다.
고흐, 37년이란 짧은 생동안 무려 40점의 자화상을 그린 사람,
26살에 붓을 잡아 그림에 몰두한 것은 고작 4년, 4년 동안 40점?
우울증에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한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자화상은 섬뜻하다.
고독과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이리 자화상을 그린걸까?
삶에 대한 의지를 태우기 위해서였을까?
색깔이 강렬하고 힘찬 붓질은 불꽃처럼 타오른다.
괴팍하고 탸협을 모르는 외골수 기질을 거울처럼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흐의 자화상은 한 외로운 영혼이 예술을 실현하기 위해 처절한 구도의 길을 걸었던
상처이며 흔적이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영적인 기운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눈빛이다.
야무지게 다문 입술과 위로 치켜 올린 눈썹, 한 올 한 올 치솟는
수염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목도 없고 귀도 없는 괴기한 모습이지만, 높은 기개와 불의에 물들지 않는
조선선비의 기상을 이 자화상에서 볼 수 있다.
귀를 짜르고(고흐), 귀가 없고(공재), 면도하다 귓볼을 베고(나)...
그럼 내 자화상은?
그림 그릴 재주가 없어 내 자화상은 글로 그린다.
속좁고 답답한 한 평생을 예견이나 했던 것처럼 좁아터진 이마, 아직도 탐욕의 끄터리가
바닷가 바위의 따개비처럼 단단하게 자리잡은 눈, 술에, 삶에 찌들어 눈가에 그려진
다크 서클, 오만과 편견에 저절로 처진 입꼬리, 아집으로 인해 우거지처럼 축 처진 코,
삐에로처럼 웃자는 건지 울자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모습, 처절하지도 기개감도
전혀 없이 한평생을 살아가는 사내가 그려진다.
오늘 아침, 거울을 아주 오랬동안 들여다 보았다.
나 맞는가? 나 잘 살고 있는가?
